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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생이 꼽는 생활관 불만
  • 작성자신주윤 기자 이은정,홍예은 수습기자
  • 조회수122
  • 학생이 행복한 생활관으로 나아가는 길 입사생들이 꼽는 불만, 생활관 입장은? 남자 기숙사 믿음관(404명 수용)과 여자 기숙사 맑음관(376명 수용) 등 생활관을 이용하는 일부 입사생들이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주로 ▲엄격한 통금 ▲불규칙한 점호 ▲불친절한 관생회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상지대신문>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1일까지 페이스북 페이지 ‘상지대 상지영서대 대신전해드립니다’와 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에서 생활관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비슷한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약 800명이 거주하는 생활관에서 어찌 보면 매년 반복해서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다. 생활관 사무실은 입사생들 불만에 어떤 입장일까? <상지대신문>이 직접 들어봤다. 이른 통금과 불규칙한 점호 생활관 “다른 대학보다 느슨한 편” 현재 생활관 통금시간은 자정이다. 통금시간이 이르다며 시간 연장을 요구하거나, 통금시간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생활관 사무실은 통금시간이 다른 대학과 비교할 때 이르지 않은 편이고, 통금을 없애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성덕 생활관장은 “5~6년 전엔 통금시간이 오후 10시였는데, 좀 더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수용해 지금과 같이 자정으로 바꾼 것”이라며 “전국 다른 대학과 비교해봐도 우리 대학 통금시간은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원주권 다른 대학 생활관도 우리 대학과 통금시간이 대동소이하다. 연세대 미래캠퍼스 생활관은 자정, 한라대학교는 오후 11시까지다. 양우철 생활관 팀장은 통금시간 자체는 필요하다며 “억압적인 통제를 하려고 하진 않지만,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만큼 아직은 기존 통금시간을 유지해 불편함을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점호는 크게 사전 점호와 불시 점호로 나뉜다. 사전 점호는 사전에 입사생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공지하고, 불시 점호는 말 그대로 예고 없이 진행한다. 입사생 사이에선 점호를 너무 불규칙하게 진행하고, 다른 층에서 점호를 진행하는 동안 오래 기다려야 하는 등 비효율적으로 진행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생활관 사무실은 다른 대학처럼 점호를 매일 하지 않는 데다, 점호와 관련해 입사생 의견도 잘 반영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입사생이 방송을 통한 점호 공지를 놓치는 일도 있어 문자메시지 공지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불시 점호도 생활관 운영상 필요하고, 한 달에 한두 번밖에 하지 않아 많은 편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양우철 생활관 팀장은 “점호 때 오래 기다려야 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고자 일주일에 많아야 한 번 하는 등 점호 자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친절한 관생회와 번거로운 외박 생활관 “관생회 권력 남용은 없어” “모바일 외박 신청할 수 있도록 할 것” 관생회가 불친절하고 고압적이라는 불만도 있다. 관생회는 입사생이 직접 선출하는 관생 자치기구다. 회장, 부회장, 총무와 각 층을 담당하는 층장으로 이뤄진다. 주로 생활관 행사를 진행하고, 입사생 의견과 민원을 수렴해 생활관 사무실과 협의하는 역할을 한다. 일부 입사생은 자치기구인 관생회가 때때로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경우가 있고, 생활관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양우철 생활관 팀장은 “관생회가 규칙 이외 권력 남용을 하는 경우는 없다”며 “사무실도 항상 친절하게 응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무실은 항상 개방돼 있어 문제가 생기면 직접 찾아와 얘기하면 된다”며 “고쳐야 할 문제점이 있다면 연말 운영위원회를 열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관생회 선거는 매년 말 이뤄지는데, 선거에 대한 홍보와 관심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일단 내년 관생회부터는 선거 시기를 3월로 옮겨 신입 입사생이 뽑도록 바꿀 예정이다. 외박신청이 번거롭다는 점도 입사생에겐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외박신청을 로비 PC에서 해야 하고, 화요일·수요일엔 외박신청을 할 수 없는 등 매일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라대학교 생활관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외박신청이 가능하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생활관은 온라인 학사 시스템을 통해 외박 신청할 수 있다. 생활관 사무실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한 외박신청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충 중이라고 밝혔다. 양우철 생활관 팀장은 “2학기 때 홈페이지를 개편해 모바일로 외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박신청 제한을 없애자는 의견에 대해선 입사생이 처음 들어올 때 생활관 규칙을 잘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고 온 만큼 “현행을 유지할 방침”이라며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생활관장 허락하에 외박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사생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활관 “복지에 더 투자하고 만족하도록 책임지겠다” 생활관 사무실은 800명 가까운 입사생이 이용하는 공간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성덕 생활관장은 “입사생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입사생이 24시간 생활하는 공간이기에 내 집처럼 편안하진 않더라도 안락한 공간이 되도록 이끄는 게 우리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입사생 복지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입사생이 더 만족하도록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신주윤 기자 이은정·홍예은 수습기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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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볼팀을 만나다
  • 작성자전우재, 정수민 기자
  • 조회수25
  • 목표는 전국대회 전관왕!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소프트볼팀을 만나다 부쩍 날이 무더워진 늦봄, 큼직한 공을 방망이로 때리고 글러브로 받는 소리가 태장체육단지를 가득 메운다. 이따금 우렁찬 기합 소리도 들린다. 우리 대학 소프트볼팀은 전국대회를 앞두고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열린 ‘제31회 전국종별 여자소프트볼’ 대회 우승한 팀답게 훈련에서도 자신감과 여유가 있어 보였다. 구재단 복귀 후 해체 위기까지 몰리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대학 정상화가 이뤄지는 동안 놀라울 만큼 빠르게 팀 전력을 끌어올렸다. 올해 남은 전국대회 세 개를 모두 제패하겠다는 소프트볼팀을 <상지대신문>이 지난달 17일 원주태장체육단지 소프트볼구장에서 만났다. 이후정 감독 3월 전국종별 여자소프트볼 대회를 우승했다. 출발이 좋은데?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2016년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그땐 체육특기생이 적어 팀을 유지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었던 이유다. 올해는 체육특기생이 라인업을 많이 채웠고, 작년에 부족했던 투수도 보강했다. 훈련과 연습게임도 열심히 했다.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잘 뛰어줬고, 여러모로 잘 맞아 떨어졌다. 팀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통과 팀워크다. 단체훈련과 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거 같다. 선수들이 다들 착하고 본보기가 될 만한 이들이다. 한 번도 이탈이 없었다. 우리 대학에 오는 선수들이 아직 고교 에이스급은 아니다. 여기 오는 걸 약간 주저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오는 선수들은 기량이 많이 향상한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고, 서로 시너지 효과도 크다. 감독 없이도 성장할 수 있는 팀이 된 거 같다. 친구 같고 늘 지켜봐 주는 감독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선수들이 감독을 이렇게나 잘 따라주는 걸 보면 나도 선수복이 있는 듯하다(웃음). 팀을 이끄는 철학이 궁금하다. 감독은 늘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즐기고 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명예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같이 땀 흘리며 뛰려고 노력해야 한다. 감독이 시범을 보여야 선수가 따라 하는 법이다. 감독 부임 후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어떤가? 대학 스포츠가 많이 침체해 있는데, 소프트볼팀은 상지대 상징과도 같다. 한국 소프트볼 대표 선수 60~70%가 상지대 출신일 정도다.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한 결과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보람 있다. 선수들이 의연하게 참 잘 버텨줬다. 서로 똘똘 뭉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니 밖에서도 응원하고 좋아해 주더라. 몇 년 전 팀 해체 위기까지 간 적이 있다. 지금도 어려움이 있을 듯한데? 구재단이 복귀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체육특기생을 뽑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대회 출전이 어려워지는 등 해체 수순을 밟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정상화가 이뤄지고, 대학본부와 강원도체육회가 지원을 많이 해주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재정적 문제가 남아있다.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팀 선수 전체에 장학금을 주고 생활관에 머물 수 있는 혜택을 주는 건 우리 대학뿐이다. 올해 입시부턴 체육특기생도 세 명씩 뽑는다. 선수 대우가 좋은 편이다. 다만, 조금 욕심을 낸다면 전지훈련을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 전국대회 세 개가 남았다. 각오가 어떤가? 목표는 전관왕이다. 실업팀이 참여하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과 다를 바 없는 동메달을 따보고 싶다. 대회 우승하면 선수들이 한 학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다른 대학 선수보다 어려운 여건에 놓인 학생들이 많다. 선수들과 의기투합해 잘 해보겠다. 박희수·안예린 학우 3월 전국대회 우승 당시가 아직도 생생할 듯하다. 박: 실감이 안 났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더라. 계속 힘든 일과 어려움이 많았는데 보답받는 느낌이었다. 주장으로서 잘 따라준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감독님께 감사하다. 안: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한 경기였다. 질 줄 알았는데, 언니들이 다 해준 덕에 이길 수 있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싶더라(웃음). 안예린 선수가 친 만루홈런이 우승을 결정한 한방이었다. (소프트볼팀은 지난 3월 31일 결승에서 단국대를 상대로 엎치락뒤치락 승부 끝에 안예린 선수의 결승 만루홈런에 힘입어 12대 8로 승리하고 정상에 올랐다.) 안: 딱 쳤는데, 타구가 폴대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애매했다. 정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폴대를 맞고 홈런이 됐다. 언니들이 베이스를 다 채워준 덕에 만루홈런을 칠 수 있었다. 박희수 선수는 주장으로서 팀 강점을 꼽는다면? 박: 아무래도 다 같이 생활하다 보니 힘들 때 서로 이야기 나누고 소통도 활발하다. 경기장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끈한 저력도 생기는 거 같다. 팀 분위기가 비교적 자유로운 거 같다. 안: 다른 팀보다 할 때 하고 놀 때 노는 분위기가 확실하다. 엄격하진 않지만, 체계가 잡혀있는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는 선배들이 기강을 잡기도 하는데, 우리 팀은 스스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감독님은 어떤 스타일이신가? 박: 어려울까 봐 먼저 다가오는 스타일이시다. 선수 입장에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안: 운동할 땐 엄격하지만, 끝나면 누구보다 편하게 대해주신다. 자기만의 강점을 꼽아달라 박: 좌완이고, 투수와 야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 공 던지는 게 더 자신 있다. 야수에게 맡기고 맞혀 잡는 피칭을 즐겨한다. 안: 타격이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편이다. 그렇다고 마구 휘두르진 않고, 카운트가 몰리면 기다리는 등 수 싸움에 자신 있다. 훈련 외 시간엔 주로 뭘 하고 지내나? 박, 안: 숙소에서 계속 자는 거 같다(웃음). 아니면 병원에 가거나. 대회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있다면? 박, 안: 부상으로 시합에 제대로 뛰지 못하거나 기량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다. 운동하다 많이 다치기도 하니까. 시합 때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해서 컨디션 조절도 신경 쓰인다. 남은 대회에 어떤 각오로 임할 생각인가? 안: 홈런 두 개를 치고 팀 우승을 이끄는 게 목표다. 박: 부상 없이 재밌게 놀다 온다는 마음으로 뛰면 결과는 자연히 따라오리라 믿는다. 전우재·정수민 기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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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바뀐 학술정보원
  • 작성자신주윤 기자
  • 조회수153
  • 이제 우리 곁에 더 가까워질까? 새롭게 바뀔 학술정보원, 미리 들었다! 학술정보원이 새롭게 바뀐다. 학습 환경을 개선하고자 출입관리시스템을 도입했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모바일을 활용한 학술정보원 이용도 더 신속하고 간편하게 바꾼다. 물론 아직 기획 단계에 머무르는 것도 있어 실제 실현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전과 다르게 학내 구성원을 위해 갖가지 새로운 시도를 도전적으로 펼친다는 게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구상하고 있을까? <상지대신문>이 이하범 학술정보원 학술지원팀장을 만나 새롭게 바뀔 학술정보원을 미리 들었다. 사진설명(학술1) 올해부터 모든 자유열람실에 도입한 출입관리시스템. (사진=신주윤 기자) 자유열람실 출입관리시스템 학술정보원 학습 환경을 개선하고자 모든 자유열람실에 출입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우리 대학 구성원과 따로 등록한 외부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다. 방법은 두 가지다. 우리 대학 홈페이지에 접속해 로그인 후 학술정보원 홈페이지로 들어가 열람실 좌석을 선택한 뒤 자유열람실 앞 출입관리시스템 기기에 모바일 신분증을 스캔한다. 또는 학술정부원 1층 대출실 입구, 4층 전자정보실 입구 앞 기기에서 모바일 신분증으로 발권해 이용할 수 있다. 독서 큐레이션 이용자가 도서를 대출한 이력을 분석해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알 수 있다. 신규 도서나 기존에 잘 읽히지 않은 도서를 적절히 활용해 도서 큐레이션을 요청하면 원하는 자료를 추천하는 제도를 운용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진행 예정이다. 사진설명(학술2) 도서 재배치 공간이 마련될 2층 정기간행물실. (사진=신주윤 기자) 도서 재배치 학술정보원은 장서 62만 권을 보유 중이다. 워낙 방대하다 보니 관리가 미흡한 부분이 있어 원하는 자료를 검색한 뒤 찾으면 그 책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전문성이 높은 책은 더 그렇다. 학술정보원은 세부 주제에 따라 책을 모으고 재배치해 찾기 쉽도록 개선할 예정이다. 국가적 이슈, 사회 트렌드를 중심으로 분류할 계획도 갖고 있다. 도서가 매년 똑같은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배치를 바꿔 다양한 도서를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2층 논문열람실과 정기간행물실을 리모델링해 재배치 공간을 설치할 방침이다. 브라운백 미팅 주제를 정해 격식 없이 토론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상반기, 하반기 한번씩 구성원 전체와 원주 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다양한 사람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또 학술정보원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학술정보원 업무 내용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메이커 스페이스 내가 배운 학습 내용을 현실화하고 창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산학협력단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용자가 학술정보원에 와서 필요한 서적을 찾아보고 기술적 교육을 받아 현실화까지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을 도울 계획이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실현할 여건이 없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학습 및 과제 지원 대학교육은 중·고등학교와 수업 방식이 다르다. 신입생이 초기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학술정보원은 신입생이 수월하게 적응하도록 학습법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학업 성취를 높일 계획이다. 재학생 대상으로는 과제를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자료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에서 착안해 도서관 사서와 연계한 자료 찾기를 지원할 계획이다. 사진설명(학술3) 홈페이지와 연동한 모바일 활용을 강화한다. (사진=학술정보원 모바일 홈페이지 캡처) 홈페이지와 연동한 모바일 활용 모바일로 학술정보원 자료 원문을 보거나 대출을 예약하고, 대출 시 모바일 학생증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져 있다. 앞으로는 모바일로 공지사항을 알리는 푸시 기능을 추가하는 등 홈페이지와 연동한 모바일 콘텐츠를 확대해 학술정보원 서비스를 더 신속하고 손쉽게 이용하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이하범 팀장은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쉽게 얻어 효율적으로 공부하도록 돕는 게 학술정보원 목표”라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학술정보원을 발전시키고, 적극적 홍보로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아쉬운 건 홍보다. 재학생 대상 선착순으로 카페 딕셔너리 이용권을 주는 ‘밥 먹고 공부하자’ 등 이벤트를 진행했지만, 학생·교수 등 학내 구성원 참여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하범 팀장은 “총학생회와 연계해 SNS를 활용한 홍보를 이달부터 진행할 계획”이라며 “학생들 요구에 맞춰 서비스를 개선하고 홍보를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새롭게 바뀔 학술정보원이 학내 구성원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벌써 궁금하다. 신주윤 기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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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홍보대사 '상상'을 만나다
  • 작성자정수민 기자
  • 조회수44
  • 종횡무진·밤낮으로 우리 대학 알리기! 학생 홍보대사 ‘상상’을 만나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동하며 우리 대학을 알리고자 밤낮없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학생 홍보대사 ‘상상’이다. 늘 바쁘게 활동하는 이들을 보며 궁금증을 품는 학내 구성원도 적잖으리라. 어떤 일을 하는지, 홍보 전략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그 전에 ‘상상’이란 이름은 대체 무슨 뜻인지 <상지대신문>이 이들을 만나 직접 물었다. ‘상상’이란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형상 상(狀)과 생각할 상(想)을 합친 이름이다. ‘경험하지 않은 모양을 상상한다’는 뜻이다. 우리 대학만의 창조성, 도전, 열정을 담고 있다.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궁금하다. 행사진행팀, SNS팀으로 나뉜다. 행사진행팀은 교내·외 모든 행사에 참여해 진행을 돕는다. 고등학교, 수시·정시 박람회, 입시설명회 등에서 우리 대학을 알리는 여러 행사도 함께한다. SNS에서 우리 대학을 알리는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한다. SNS팀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우리 대학 공식 SNS 계정을 관리한다. 팀 안에서 다시 영상팀과 시각영상디자인팀으로 나뉘어 콘텐츠를 제작한다. 영상팀은 직접 기획·연출·촬영·편집해 우리 대학을 알리는 홍보물을 만들거나, 교내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스케치 영상으로 담는 일을 한다. 시각영상디자인팀은 SNS에 올릴 디자인 작업을 도맡고, 홍보 리플렛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존재는 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대학 마스코트도 다시 만들 계획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홍보대사라는 직책답게 우리 대학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행사에 임하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우리 대학 장점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둔다.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솔직히 우리 대학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가 적잖다. 대학 이미지 개선하고자 상지영서대학교와 통합, 총장직선제 등 학교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구성원 활동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고 한다. 어떻게 비리 재단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뤘는지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형식적인 홍보 영상이 아니라, 일반 사람이 친근하게 느끼고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만들어 우리 대학을 알리고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힘든 점도 있을 거 같다. 아직 홍보대사가 만들어지고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여러 지원이 부족한 게 아쉽다. 홍보대사 활동하는 학생이 대부분 고학년이라 전공 수업 말고도 대외활동, 취업 준비 등 할 일이 많다. 홍보대사까지 병행하려니 아무래도 다른 학생보다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과제 등을 하려면 밤을 새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 힘들다. 마지막으로 홍보대사로서 각오 한마디 부탁한다 우리 대학을 향한 자부심과 애교심을 홍보대사뿐만 아니라 학내 구성원 모두 느낄 수 있도록 모든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 정수민 기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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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 입학홍보처장을 만나다
  • 작성자정수민 기자
  • 조회수44
  • 통합 상지대와 함께할 첫 신입생, 어떻게 뽑을까? 조우 입학홍보처장을 만나다 우리 대학과 상지영서대학교를 합친 ‘통합 상지대’가 내년 3월 문을 연다. 당장 올해 입시부터 통합 상지대로 신입생을 모집해야 한다. 통합으로 바뀔 게 많은 만큼, 입시와 홍보를 담당하는 입학홍보처도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올해 새로 부임한 조우 입학홍보처장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상지대신문>이 조 입학홍보처장을 만나 입시 방향과 전망을 들었다. 통합 상지대로 입시를 준비한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을 듯한데? 우선 입학정원이 작년 1,727명에서 올해 2,255명으로 늘었다. 신설학과도 많다. 상지영서대와 통합하는 과정에서 시대 요구와 학생 선호도를 고려하고, 문재인 정부 목표인 ‘포용 국가’와 4차산업혁명을 반영해 학과를 새로 만들었다. 보건과학대에 작업치료학과·재활상담학과·언어치료학과, 예술체육대학에 뷰티디자인학과·만화애니메이션학과·패션디자인학과, 인문사회과학대학에 아시아국제관계학과·군사학과 등 총 15개 학과다. 입시에서 강조할 우리 대학 장점은 무엇인가? 수도권과 접근성이 좋다. 통학버스, KTX, 제2영동고속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잘 돼 있다. 또 2021년 기숙사 신축이 예정돼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이 편하고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사회협력대학으로도 강점이 있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대학이다.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시대 흐름에 맞게 새로운 학과를 만들었고, 교과과정도 개편할 계획이다. 올해 전반적인 입시 방향은 어떤가? 우리 대학 수시와 정시 비율이 8대 2다. 실기 중심인 예체능 학과를 빼면, 대부분 학생부 교과와 종합 전형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의학과·간호학과를 제외하곤 수시에서 수능 최저 등급 제한을 두지 않아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올해부턴 30세 이상 성인 학습자만 유치하는 전형이 새로 생겼다. 평생교육융합대학, 생애개발상담학과, 사회적경제학과가 대상이다. 자기 생애주기를 길게 보고 삶을 지탱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우리 대학에 지원하고픈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대학에 오면 ‘상상하면 현실이 되지’란 슬로건에 맞게 본인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인재로 만들겠다. 바로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겠다. 우리 대학에서 교육받으면 모든 할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이다. 입학홍보처를 앞으로 어떻게 이끌 생각인가? 학령인구가 매년 3만 명에서 5만 명 정도 줄어들고 있다. 당연하지만, 인구가 적은 지방은 더 타격이 크다. 모든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입학홍보처장이 돼 부담이 크다. 하지만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상지영서대와 통합으로 신입생 충원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 기대가 많다. 희망이 보인다. 정수민 기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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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이끈 사람들 (3) 김누리 동문
  • 작성자전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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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식이 통하는 대학이 되길 원했다”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 &#9314; 김누리 동문 대학 민주화엔 대학언론도 함께 했다. 함께 현장을 누비고 기록하며 김문기 씨 측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대학본부가 노골적으로 탄압에 나서고, 인력과 지원도 열악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교지편집위원회도 그 중심에 있었다. ‘진보적인 민중언론을 지향하는’ 학내 유일 자치언론답게 편집권 침해에 맞서며 권력을 비판하고 학내 구성원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했다. 김누리(언론광고·13) 동문은 당시 편집장으로 활약하며 교지 활동을 진두지휘했다. 교지 발행뿐만 아니라, 문화기획을 가미한 투쟁 활동을 함께하고, 때로는 직접 마이크를 들고 부당한 권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교지 사무실은 학생사회 아지트로 쓰이기도 했다. 그 공로로 김 동문은 대학 민주화 유공 졸업생 특별 포상을 받았다. 지금은 서울에서 음반 기획자로 활동 중이라고. 우리 대학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을 만나는 연속기획, 세 번째로 김누리 동문이다. 입학할 때부터 학내 문제에 관심 있었나? 원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라 상지대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김문기 씨 복귀 조짐이 보여 조금씩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더라. 대학사회는 우리 사회 축소판 아닌가. 마땅히 신경 쓸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질적 피해도 있었다. 1학년부터 교내 영어 프로그램을 열심히 들었는데, 하나둘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머릿속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피해를 직접 체감하니 더 관심이 생겼다. 교지편집위원회 활동을 1학년부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지를 하고 싶었다. 학내 이슈처럼 내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라 중요한데, 관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교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고교 땐 교지가 그런 역할을 못 하더라. 외부 이슈나 시사·교양을 주로 싣고. 학생사회가 사회 축소판이라면 언론이 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좀 아쉬웠다. 대학에서는 학내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을 거 같아 다른 동아리는 보지도 않고 교지를 선택했다. 기대한 교지 활동은 어땠나? 처음엔 약간 아쉬웠다. 교지는 이슈를 비교적 긴 호흡으로 깊이 있게 다루는 게 장점인데, 아무래도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학내 이슈를 다룰 때 만족스럽지 않은 지점이 있었다. 뭔가 겉핥기 같다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편집장을 맡은 건가? 원래 교지는 같은 기수 안에서 돌아가면서 편집장을 맡는 식인데, 2015년엔 내가 자원해서 편집장을 맡았다. 앞서 말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었다. 김문기 씨 측에 비판적 논조로 대학 민주화를 적극 지지했다. 현장에 있지 않고, 글이나 사진으로만 우리 대학 문제를 접했다면 내가 그렇게 시간을 내고 밤을 새워가며 활동할 수 있었을까 싶다. 친구들이 현장에서 정말 울부짖고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함께할 수밖에 없더라. 논리 없는 말을 내뱉는 교수·직원에게 화도 나고. 그걸 실제로 보고 들으니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던 거 같다. 같이 있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대학본부와도 갈등이 많았을 듯하다. 태도가 확 변하더라. 처음엔 우리가 유일한 자치언론이라면서 우호적으로 나오더니, 논조가 비판적으로 바뀐 2014년 말부터 교지대금을 끊으려는 조짐을 보였다. 발행 부수도 줄이라고 압박하고. 특히 2015년 1학기 교지 표지를 구재단 로고를 펼치면 원래 우리 대학 로고가 보이는 식으로 제작했는데, 발간일에 본부가 교지를 회수하라는 압력을 넣더라. 행정 지원 체계도 부정적으로 바뀌어 본부와 실랑이하고 설득하는 과정에 오래 걸렸다. 그 표지가 많은 파장을 일으킨 거로 기억한다. 교지 발행뿐만 아니라 당시 교지 사무실이 학생사회 ‘아지트’ 역할을 하는 등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 활동에 함께 했다. 언제쯤 승리할지 알 수 없는 지난한 싸움이었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 함께 한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실제 행동하며 힘을 모으고 투쟁에 앞장서는 이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 언제 해결될지 답도 없었지만, 설령 안 되더라도 우리끼리 뭔가 행동을 한다는 게 좋았다. 변화를 향한 과정에 함께 한다는 느낌 자체가 힘이었다. 지금도 가끔 불합리하거나 맞서야 할 일을 겪을 때면 그때가 생각나 뭔가 아련한 마음이다. 졸업하고 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어떤가? 박주환 감독 [졸업]을 작년과 올해 두 번 봤는데 감회가 다 다르다. 처음 볼 땐, 다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 친구·동료처럼은 못해도 2015년 나만큼은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두 번째 볼 땐, 우리 대학이 소위 민주화 이후 정상화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게 제대로 되는 건지 의문이 들더라. 민주화만 이뤄지면 잘 될 거 같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 대학 내부에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절대 악이 사라진 우리 대학이 중심을 어떻게 갖고 가야 할까 싶다. 졸업할 때 대학 민주화 유공 졸업생 특별 포상을 받았다. 부끄러웠다. 대학 민주화가 되고, 때마침 기념비적 졸업식을 진행한 덕에 운 좋게 받았다. 함께 열심히 한 친구들은 구재단 시절 졸업하거나, 투쟁 여파로 졸업하지 못했는데, 내가 졸업하며 이런 상을 받아 부끄러웠다. 내 상이 아닌데 대신 받은 게 아닌가 싶다. 김문기 씨 측이 물러나고 소위 대학 민주화가 이뤄졌다. 감회가 어떤가? 형식적 민주주의는 갖춰졌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투쟁할 때도 우려한 상황이다. 구재단이라는 거악에 가려져서 그렇지 학생사회를 비롯한 곳곳에 문제가 적잖았다. 그게 터져 나올 수 있다. 민주화는 이제부터 만들어가는 거다. 거악 때문에 외면한 내부 문제를 바꾸고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민주화 감회에만 취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 이후의 상지대에 바라는 점은? 상식이 통하는 대학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비상식적이고 고지식한 이들에게 신물 나게 당하지 않았나. 이러지 않기 위해 민주화 투쟁을 했으니, 당연히 상식이 통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 김누리 삶에 상지대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 좋은 추억을 남겼다.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사람도 많이 보고, 그만큼 좋은 사람도 적잖게 만났다. 그때 기억이 뜻깊다. 어쨌든 누가 상지대 얘기 꺼내면 “거기 이제 민주화 이루고 정상화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할 거 같다. 전우재 기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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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자립과 교육혁신 이끌 방안은?
  • 작성자신주윤, 정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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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구 대외협력처장·김경환 미래교육혁신원장을 만나다 상지영서대학교와 통합을 시작으로 민주공영대학으로 나아가는 큰 비전을 세우고 있는 우리 대학은 재정자립과 교육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열악한 재정을 개선해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육 질과 전문성을 높여 학생 만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대학본부는 지난 2월 27일 대외협력처와 미래교육혁신원을 신설했다. 대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기관이다. 어떤 목표와 계획을 갖고 있을까? <상지대신문>이 지명구 대외협력처장과 김경환 미래교육혁신원장을 만났다. 지명구 대외협력처장 대외협력처는 왜 만들어졌나? 구재단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고 신입생충원율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생겨 우리 대학 재정이 많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 대학이 기본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다른 대학은 대외협력처를 만들어 발전기금을 받고 있다. 예술체육대학장을 맡았을 때, 정대화 총장에게 대외협력처를 만들어 교육, 연구, 봉사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제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돼 결국 대외협력처가 새로 생겼다.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학내 업무를 제외한 대외적 일을 맡아서 한다. 발전기금팀, 국제교류팀으로 나눠서 일한다. 발전기금팀이 아무래도 중요할 거 같다. 등록금 의존을 낮추기 위해 외부자금을 받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교수협의회를 통해 발전기금을 받아 학생 장학금을 주거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재정이 좋지 못해 교수·직원 돈을 모아 쓰고 있지만, 이게 발전기금 주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발전기금을 유치해야 한다. 아직은 발전기금을 쉽게 받기 힘들다. 상지영서대학교와 통합하고, 학사구조를 개편해 학생·교수가 늘면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될 것이다. 그럼 기업들과 상호 협력하는 과정에서 발전기금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교류팀엔 어떤 일을 맡겼나? 국제어학원에서 외국인 학생 80여 명이 한국어 교육을 받아 우리 대학 본과에 입학한 사례가 있다. 글로벌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이렇게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을 예정이다. 호주, 하와이에 있는 대학과 교류하려 한다. 우리 대학 학생이 해외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대외협력처가 할 일이 또 많을 거 같은데? 교수와 학생이 얻기 힘든 프로젝트 정보를 구해 연구 활성화와 취·창업을 도울 계획이다. 또 지역사회를 돕고자 우산동을 포함해 원주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원주시가 추진하는 사회적 경제에 관한 토론회를 열거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외협력처를 잘 이끌 자신이 있어 보인다 나는 일을 성취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 훈련이 돼 있다. 일하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나도 부정적 생각을 갖지 않고 긍정적으로 하나씩 이뤄 가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소속돼 원주시와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우리 대학과 원주시에 도움이 되고 싶다. 김경환 미래교육혁신원장 이름만 들으면 어떤 기관인지 감이 잘 안 온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기관이다. 교육 개혁을 위한 행정 조직으로 보면 된다. 다른 대학은 교과목과 수업 내용·형식에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 대학은 구재단과 많은 문제를 겪으면서 그런 노력을 못 했다. 대학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이제는 교육 혁신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학생들 강의 평가에 대한 분석도 많이 이뤄지고, 단과대학별 비교·평가도 할 거다. 강의 평가 점수가 평균보다 낮은 학과는 더 높이고, 평균보다 높은 학과는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강의 방식을 찾을 거다. 교수에게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겠다. 다른 대학에선 4학년 2학기에 절반만 수업하고 절반은 취·창업에 매진하는 유연학기제를 시행하거나, 성적 부여 방식을 다양하게 바꾸기도 한다. 강의 만족도를 높여 강의 평가 점수가 잘 나오게 하려는 개혁이다. 정대화 총장이 추구하는 질 높은 교육, 학생행복대학을 만들고자 노력하겠다. 대학에 미칠 영향도 적잖을 거 같은데? 교육 수준이 좋아지면 우리 대학에 대한 학생 만족도가 올라 성과도 좋아질 것이다. 목표를 세워 놓은 게 있다면? 새로 만들어진 기관이라 기존 데이터가 없다. 주관식 강의 평가도 해당 교수 개인만 볼 수 있다. 주관식 강의 평가를 텍스트 분석해 가장 많이 지적된 문제를 다음 학기 수정하도록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미래교육혁신원은 분석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다. 바꾸는 건 교육연구처가 함께할 것이다. 통합 상지대와 공영형 사립대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화두다. 미래교육혁신원도 어깨가 무거울 거 같다. 다른 대학엔 이미 미래교육혁신원과 같은 기관이 있는데, 우리 대학은 정상화가 되면서 새로 만들었다. 공영형 사립대학 선정에 필요한 데이터와 논리를 개발하고, 다른 대학과 어떻게 차별화한 교육을 할지 연구하겠다. 미래교육혁신원을 잘 이끌길 기원한다 원래 강의 평가를 분석해 강의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연구해왔다. 하던 업무를 계속하는 느낌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향을 확실히 잡아 기초 기반과 데이터를 쌓을 것이다. 틀을 잘 잡고 싶다. 신주윤, 정수민 기자
  •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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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이끈 사람들 (2) 김병준 학우
  • 작성자전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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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우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투쟁을 고민했다”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 &#9313; 김병준 학우 김문기 씨가 20여 년 만에 돌아와 한창 우리 대학을 장악하고 측근을 통해 권세를 휘두르던 시기, 탄압이 날로 거세짐에도 학생사회 동력은 떨어질 줄 몰랐다. 집회·점거·농성 같은 고전적 투쟁뿐만 아니었다. 팟캐스트와 축제를 진행하고 국회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등 학내 문제를 참신하게 알리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그 다채로운 활동 중심에 김병준(문화콘텐츠·11) 학우가 있었다. 김 학우는 일반 학우에게 편하게 다가갈 방법을 늘 고민했다. 2015년 학과 학생회장, 2016년 인문사회과학대학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밌게 노는 방식으로 투쟁 선봉에 섰다. 지금은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가를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는 문화협동조합 피올라 대표로 지역 청년과 재밌게 놀며 함께 성장하고 자립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우리 대학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을 만나는 연속기획, 두 번째로 김병준 학우다. 입학할 때부터 학내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처음엔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선배들 따라 집회·농성에 나가긴 했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놀고 싶었다. 점점 내가 생각한 대학 생활과 다르게 흘러갔지만. 그저 상지대 특수성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구재단이 한창 대학을 장악한 2015년 2학기 복학해 덜컥 학과 학생회장이 됐다. 15학번 후배들이 본관 앞에서 집회하는데 직원들이 밀치고 겁박하더라. 후배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 없었다. 또 당시 학과에서 아버지·어머니와 같은 공제욱·강이수 교수가 징계당할 위기에 놓였다.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했다. 팟캐스트 ‘학교를 부탁해’를 진행하는 등 활동력이 대단했다. 삶의 태도 자체가 사건을 문화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화콘텐츠학과가 전공인지라 투쟁도 내가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하자는 마음이 있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농성 문화가 지금 세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부터도 신입생 때 집회가 재밌었다면 그렇게 빠지려고 하진 않았겠다 싶더라. 일반 학우에게 손쉽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했다. 이야기를 모으고 알리려면 말랑말랑한 매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팟캐스트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당시 문화콘텐츠학과 학생들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개강총회보다 농성에 참여하는 학생이 더 많은가 하면, 졸업생이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런 영향도 적잖았다. 이듬해 인문사회과학대학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대학본부가 학생회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탄압이 심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농성·집회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특색 있는 축제를 진행하는 등 독특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인사대 2천 명이 같은 이해관계를 만들면서 재밌게 놀았으면 했다.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밌게 놀았다. 이공과대학 학생회와 ‘인공호흡’이라는 축제를 진행해 많은 학내 구성원이 즐기고 <트웬티>라는 대학 미디어에 소개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당시 이종승 이공대 학생회장, 최다혜 보건과학대학 학생회장 등이 함께 해줘 힘이 됐다. 대학 정상화를 바라는 학내 구성원과 시민 뜻을 전달하고자 국회까지 도보 행진하기도 했다. 고생하더라도 의미 있게 하고 싶더라. 총학생회를 비롯해 당시 학생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기도 했다. 중앙동에서 원주 시민 서명을 받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전달하기 위해 열 명이 함께 240km 여정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큰 사건이 터졌다. 분당쯤 도착하니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더라. 교문위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국회에 도착해 만나기로 했던 유성엽 교문위원장을 못 만나고 보좌관을 만났다. 마지막에 기자회견 하면서 나름 이슈 몰이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허무하지만 이해했다. 이화여대 사건도 큰 문제였으니까. 전국 대학과 연합해 서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전국 단위 총학생회 네트워크에 연대를 부탁하는 성명서를 보냈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카이스트, 동국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 13개 대학 총학생회가 광화문에 모여 우리 대학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많은 언론이 다룰 만큼 효과가 있었다. 동국대처럼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대학도 있었다. 사실 우리가 연대의 도움을 받은 만큼, 우리도 아직 학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대학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되레 요즘은 그런 활동이 좀 뜸해진 거 같아 아쉽다. 인사대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한 1년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사람들만 기억에 남는다. 나와 집행부를 함께 하며 고생한 후배들이 이듬해 총학생회 집행부로 많이 갔다. 그 친구들은 위기 대응법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학생회 1~2년 더 활동하면서 잘하더라. 당시 인사대 내 학과 학생회장들과도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고 결속력도 좋다. 학교를 쉬고, 지역에서 청년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화협동조합 피올라 대표를 맡고 있다. 피올라는 지역문화예술분야 생산자가 일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원주에 문화예술 분야 프리랜서가 많은데, 나는 그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문화생산자로 부른다. 생산자가 하고픈 일을 하며 지역에서 자립하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전시·축제를 해도 결과물보단, 생산자가 크는 데 중점을 둔다. 다 함께 실존을 고민하는 협동조합이다. 앞으로도 계속 지역에서 관련 활동을 할 생각인가? 지금보다 더 많은 생산자가 피올라와 함께 해야 한다. 또 피올라 같은 단체가 지역에 열 개 이상 생겨야 한다. 우리는 직원이든 조합원이든 사업체든 들어왔다가 1년 만에 나가도 된다. 단, 꼭 성장해서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협업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지역에서 생산자가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세우고 생태계를 만드는 큰 과정이다. 다 같이 잘 살 방법을 고민할 거다. 그걸 바탕으로, 전문성 높은 문화예술단체 디렉터가 되고 싶다. 김문기 씨 측이 물러나고 대학 민주화가 이뤄졌는데, 감회가 남다를 거 같다. 솔직히 별 느낌 없다. 오묘하다. 내가 싫어하는 게, 투쟁 경험이 삶에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을 거란 말이다. 허무맹랑한 말이다. 당시 고생한 친구들에게 그 경험은 아픔이고 슬픔이고 고단함이다. 보상을 바라지 않으면서 청춘을 바쳤다. 안 그래도 올해 졸업식 보기가 힘들더라. 15학번은 축제나 대학 생활도 제대로 못 즐기고 대의를 위해 싸웠다. 속상하다. 민주화 이후의 상지대에 바라는 점은? 이젠 본질적 문제에 접근했으면 한다. 해결할 문제가 산적하다. 지역사회와 협력도 말만 하지 말고 좀 더 고민하고 실행했으면 한다. 상지대는 그래도 협동·협력 DNA가 있으니까 맘만 먹으면 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번에 교양 과목이나 특강도 그렇고 교육을 청년 시각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건 칭찬하고 싶다. 그렇게만 갔으면 좋겠다. 정대화 총장이 최근 페이스북에서 말했듯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로 만들면 안 된다. 학생들이 4년간 고민하고 자기 일을 선택할 시간을 벌어주는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학생사회도 김문기 씨가 사라진 이후로 기획이 잘 안 나올 거다, 학생 권익·복지를 제대로 얘기할 역량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나와야 한다. 학생사회가 이제 다양성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다양성 중에서도 지역성을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병준 삶에 상지대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 투쟁이 일상이었기에 일상이 아니었던 순간, 이를테면 맘 편히 친구들과 놀고 누군가와 사랑한 순간들이 생각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상지대 얘기만 할 친구도 생긴 거 같다(웃음). 전우재 기자
  •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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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이끈 사람들 (1) 박주환 동문
  • 작성자전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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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로 후배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 &#9312; 박주환 동문 현장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2012년 총학생회장을 끝으로 졸업했지만,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 김문기 씨가 총장으로 돌아온 뒤, 대학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순간순간마다 카메라를 붙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렇게라도 후배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박주환(행정·05) 동문은 그렇게 영화 [졸업]을 완성했다. 우리 대학 민주화 투쟁을 다룬 이 영화로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을 받았다. 상금 일부를 교내 장학금으로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 대학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을 만나는 연속기획, 첫 번째로 박주환 동문이다. 영상을 찍으면서 학내 문제를 공부했다고 들었다. 2009년 중순 새로 생긴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시민 대상으로 강의 들으면서 영상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영상 소재를 고민하다가, 마침 김문기 씨가 정이사 추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학생회가 교내 천막농성을 시작해 그걸 찍기로 했다. 처음엔 학생회에 별로 참여하지 않았던 탓에 농성장 가서 찍는 게 불편하더라. 학생회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학내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 그때 공부를 시작했다. 학내 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언제부턴가? 1년 휴학을 마치고 복학하려는데, 박강민 당시 총학생회장 연락을 받았다. 내가 2009년 찍은 영상을 봤다며 정책국장으로 함께 하자더라. 4학년에다 복수전공까지 하고 있어 너무 바쁠 거 같아 원랜 거절하려고 했다. 근데 박 총학생회장과 승현이(이승현 당시 부총학생회장)가 설득하고, 작년에 동기인 학생회 간부들이 시위하다가 잡혀가는 영상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던 일이 떠올라 더는 거절하기 힘들더라. 이듬해 총학생회장이 됐다. 원래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주변 설득에 마음이 기울었다. 보궐 선거인데 다른 후보가 없더라. 또 총학생회를 1년 동안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게 있지 않나. 무엇보다 총학생회장은 지금 아니면 못하는 거니까. 해야 할 거 같았다. 총학생회장 1년은 어땠나? 총학생회장 활동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고 했다. 그동안은 학생회가 학생들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사조직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파하고 싶었다. 전학대회, 확운위, 학생총회를 많이 열었다. 총학생회 회칙도 바꾸고, 널리 알리고자 인쇄해서 뿌렸다. 학생회 재정도 전학대회에서 공개했다. 임기 끝나고 나니 지치고 힘들어서 얼른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근데 떠나지 못했다. 총학생회장 하던 중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수술을 크게 했다. 후유증으로 이듬해까지 재활하느라 취업 활동을 제대로 못 하겠더라. 마침 대학원관에 있는 상지학원발전기금재단에 자리가 생겨서 들어갔다. 그해 말쯤, 2010년 학내 분규를 촬영한 영상을 아는 선배에게 받았다. 이걸 편집해서 단편영화라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문기 씨가 총장으로 돌아온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명식이(윤명식 당시 총학생회장)가 보직 교수에게 뺨 맞고 욕먹는 영상 보면서 화가 났다. 김문기 씨가 총장으로 돌아오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카메라를 들고 거의 모든 현장을 찍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다. 명식이, 준성이(박준성 당시 부총학생회장)가 원래 알던 후배들이라 더 나서게 된 거 같다. 영화 <졸업>에서 “카메라로 후배들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교직원이 현수막을 찢을 때도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피하고 그러더라. 내가 2005년 입학해 대학이 혼란스럽기 전까진 교직원 대부분과 껄끄럽지 않았다. 근데 친 김문기와 반 김문기로 교직원이 나뉘고, 총학생회장을 한 내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있으니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계속 나타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거밖에 없었다. 찍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되게 안쓰러웠다. 내가 신입생일 때, 또 총학생회장일 때와 상황이 다르잖은가. 다른 학생들도 학교에 정떨어지고 애정이 식는 게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졸업>에서 우리 대학 민주화 과정을 디테일하게 설명하기보다,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사실관계는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기사 찾아보면 알 수 있다. 팩트를 나열하니 사람들이 그거에만 집중하더라. 사건만 두드러지고, 그 속의 인물은 주목받지 못하는 게 싫었다.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거대한 권력 앞에 나약한 개인이 저항할 수 있는 수단, 그럴 수밖에 없는 수단이 뭔지 말이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시끄럽고 과격하게 싸우느냐고 한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상황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을 받았다. 상금 일부인 300만 원을 교내 장학금으로 내놓았는데?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좋은 일에 쓰고 싶어 쾌척했다. 어차피 학교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내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장학금 내라는 성화도 있었다. 앞으로도 영화감독으로 활동할 계획인가? 상은 받았지만, 진로가 확실해지는 건 아니다. 상 받고도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분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봤다. 여전히 뭘 해야 할지 고민이다. 영화 쪽 일할지, 취업할지, 아예 다른 진로를 정할지. 지금은 촬영·편집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낸다. 김문기 씨 측이 물러나고 대학 민주화가 이뤄지는 과정을 보며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다. 기분 좋았다. 그전까진 학교에 다 힘들어하는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요즘은 되게 기쁜 마음으로 학교 가서 사람들 만나고 밥도 먹는다. 투쟁이 실패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다. 세종대 비리 문제를 다룬 영화 <주님의 학교>를 찍은 전상진 감독은 학교에 잘 안 간다고 하더라. 거긴 해결이 안 됐으니까. 민주화 이후의 상지대에 바라는 점은? 투쟁할 때 학생, 교수, 직원 세 주체가 논의해서 함께 나아간 정신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과정을 계속 구성원에게 공유하고, 결정할 때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제도가 마련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어떤 게 민주주의인지 고민해야 지킬 수 있다. 박주환 삶에 상지대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 많이 배우고 느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태도, 가치관, 사람과 관계 등등.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시기였다. 대학, 취업, 연애, 결혼 등 정해져 있는 길이 많은데, 그런 것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전우재 기자
  •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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